‘택시운전사’ 리뷰: 평범함이 역사를 움직일 때
‘택시운전사’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장면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실화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가 유난히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거대한 역사를 거대한 인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택시 기사와 외국 기자라는 두 평범한 목격자의 눈을 통해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붙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설명을 덜어내고 장면 자체로 설득하고, 연출은 과장 대신 체감되는 현실감을 선택한다.
왜 ‘택시운전사’가 특별한가: 평범한 개인을 통한 거대한 증언
이 영화의 힘은 “평범함”에서 시작된다. 만섭(송강호)은 역사나 이념에 관심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건 밀린 월세와 아이와의 일상이다. 하지만 생계를 위한 선택이 그를 광주 한가운데로 데려가고, 그가 본 것을 관객이 함께 보게 된다. 이 장치는 관람의 거리감을 줄이고, 관객이 특정 진영의 입장이 아니라 현장을 본 사람의 감정으로 영화에 접속하게 만든다.
중반부 병원 장면과 도심에서의 폭력, 시민들이 서로를 부축하는 모습은 자극적 묘사 없이도 긴장을 끌어올린다. 후반부 노란 택시가 빗속을 가르며 달리는 시퀀스는 상징성과 감정이 정확히 겹치는 대목으로, “목격에서 전달로” 넘어가는 결심의 순간을 또렷하게 박아 둔다. 송강호는 말보다 표정과 호흡으로, 토마스 크레춋만(피터)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 변화의 궤적을 채운다.
배경의 진정성: 1980년 5월, 서울과 광주의 두 개의 시간
영화는 서울과 광주의 공기가 어떻게 달랐는지 조용히 대비한다. 서울에서의 일상적인 혼잡과 소소한 삶의 고단함은, 광주에 닿는 순간 서서히 색이 바래고 소음의 결이 바뀐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풍경이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와 공포로 물든다. 거리의 가게 간판, 차량, 군인 복장, 허둥지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그 디테일을 쌓아 올린 덕분에 관객은 카메라가 흔들릴 때마다 실제 현장을 밟는 듯한 질감을 느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실제 피터 기자의 영상은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거의 지워 버린다. 극중 서사가 허구가 아니라 기록으로 이어졌던 일임을 확인시키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긴다.
메시지: 진실, 용기, 그리고 기억의 방식
‘택시운전사’가 남기는 울림은 단순한 비극의 재현이 아니다. 만섭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고, 끝까지도 거창한 인물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사람의 선택으로 진실이 세상에 도달하도록 만든다. 피터의 카메라도, 그 카메라를 서울 밖으로 실어 나른 택시도, 결국 누군가의 작고 구체적인 결심의 결과다.
이 영화가 말하는 기억의 방식은 이렇다. 누구에게나 과거는 불편할 수 있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외면으로는 아무것도 낫지 않는다. 누군가는 보고, 기록하고, 전달해야 한다. ‘택시운전사’는 그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묻는다.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할 의미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가 낡지 않는 건, 주제가 특정 시대의 정치적 논쟁을 넘어서 보편적인 윤리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일,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록을 남기는 일, 그리고 그 기록을 믿고 다시 전하는 일.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연대, 평범함의 용기가 서로 맞물릴 때 공동체는 한 발 나아간다.
그래서 ‘택시운전사’는 실화 영화 이상의 가치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대한 영웅담이 아니라, 옆자리의 누군가가 내민 작은 손길일 수 있다는 사실. 그 소박한 진실을 영화는 꾸미지 않고 건네준다.
한 줄 권하는 말
무거운 주제라 망설여질 수 있지만,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증언의 가치와 사람에 대한 신뢰다. 반드시 한 번은, 가능하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오래 이야기해 볼 만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