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인> — 시대의 공기 속에서 시민이 되어 가는 이야기
영화 <변호인>을 다시 보면, 이 작품이 단순한 법정극도, 누군가의 신화 만들기도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된다. 1980년대의 공기, 숨 막히는 통제의 감각, 그 틈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한 사람의 마음. 영화는 그 변화의 궤적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실존 인물을 연상시키는 주인공 송우석은 ‘성공한 서민’의 자기확신으로 시작해, 국가와 법, 시민의 존엄을 자기 언어로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도착한다. 영웅의 질주가 아니라 흔들림—분노—주저—결단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곡선. 그 끝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정의라 부르며, 언제 목소리를 낼 것인가.
감상 포인트 : 몰아치기
감상 포인트는 명확하다. 첫째, 변화의 동선이 감정 몰아치기로 처리되지 않는다. 사건을 외면하려는 합리화, 눈앞의 폭력에 대한 당혹, 법리의 벽 앞에서의 침묵, 그리고 마침내 발언까지, 작은 표정과 호흡의 차이로 설계된다. 둘째, 영화는 관객에게 ‘분노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문 실무의 절차, 조작된 진술서가 생산되는 구조, 법정에서의 말꼬리 잡기 같은 디테일을 차분히 쌓아 “무엇이 옳은가”를 스스로 고르게 만든다. 셋째, 클라이맥스에서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명대사 이상의 기능을 한다. 법률 텍스트가 추상적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가리키는 실질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배우의 육성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정서는 감동이라기보다 각성에 가깝다.
시대적 배경 : 유신의 잔영
배경은 1981년 부산. 유신의 잔영이 남아 언론·사상·학문이 억눌리던 시절, 도시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현장이다. 영화가 토대로 삼은 부림사건은 실재했다. 무고한 시민이 간첩으로 몰리고, 불법 구금과 고문이 수사를 대체하던 폭력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포장되던 때. 카메라는 과장 대신 절차의 질감을 택한다. 조사실의 습기, 철제 책상의 차가움, 서류에 찍히는 도장의 둔탁한 소리 같은 구체가 관객의 피부감각을 흔든다. 이 배경이 깔리자 송우석의 선택은 개인적 의협심이 아니라 ‘시민으로 서는 일’이 된다. 한 개인의 싸움이 체제의 결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영화는 개인 서사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한다.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의 설득력은 ‘한 번에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는 오랫동안 법을 생계의 기술로 사용해 온 인물이다. 판사 시험 낙방의 기억, 가족의 생계,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은 그를 현실로 붙잡아 둔다. 그런데 진우의 몸에서 시작된 타인의 고통이 그의 논리를 흔든다. 침묵은 길고, 분노는 느리다. 그는 수차례 회피하고, 때론 자기 자신을 변호한다. 그러다 마침내 법정에서, 더는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순간을 맞는다. 이 여정은 말투와 옷차림, 걸음걸이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매끈한 수트의 선이 무너지고, 문장은 길게 숨을 들이마신 뒤 거칠게 쏟아져 나온다. 외형의 균열은 내면의 전환과 나란히 간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어느새 상징이 된다. 더는 묵인하지 않겠다는 시대의 집단적 자각이 한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형상화되는 것이다.
연출의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카메라는 사건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복도 끝에 걸린 조명, 절반만 열려 있는 문틈, 묵묵히 흐르는 라디오 뉴스가 시간의 공포를 대신 말한다. 음악은 과도한 감정을 부채질하지 않고, 침묵을 위해 물러선다. 배우들의 호흡은 리얼리즘의 톤을 유지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리듬을 바꾼다. 특히 증언 장면의 끊어 읽기, 판결문 낭독의 건조한 울림은 관객의 심장을 직접 두드린다.
흥미로운 지점 : 언어의 충돌
영화가 더 흥미로운 지점은 ‘법의 언어’와 ‘사람의 언어’가 한 화면에서 충돌하는 순간들이다. 조항과 조문, 증거 능력과 절차 논쟁이 오가는 사이, 한 인간의 체온과 삶의 사실들이 흘러들어 온다. 송우석이 택한 전략은 법을 이용해 법의 빈틈을 드러내는 일, 다시 말해 제도 내부에서 제도의 목적을 환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변론은 웅변이 아니라 설득이다. 그는 상대를 무너뜨리지 않고, 관객(혹은 배심)의 양심이 서서히 방향을 돌리도록 기다린다. 이 기다림의 미덕이야말로 이 영화가 품은 민주주의의 감수성이다.
주변 인물들도 기능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식당의 온기, 동료 변호사의 회의와 연대, 가족의 눈빛은 주인공의 결정을 떠미는 작은 손이 된다. 거대한 슬로건 대신 생활의 디테일을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정의가 삶과 분리된 구호가 아님’을 증명한다. 관객은 결말의 판결문을 넘어, 이후의 일상까지 상상하게 된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는지, 우리의 자리에서 체크해야 할 항목은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변호인>은 한 사람의 언어가 시민의 언어가 되는 과정을 기록한 영화다. 실화에서 출발했지만 실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법과 제도, 그리고 양심이 만나는 접점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일상을 감수할 것인가. 질문은 오래 머물고, 그 오래됨이 우리를 조금씩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