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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 룩 업 학자의 경고는 왜 묵살되었나? , 대통령과 참모들 , 인물관계도 , 마무리 질문

by sky6325 2025. 10. 18.

 

2021년에 공개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은 끝이 다가오는 재난극의 외형을 쓴 블랙코미디다. 혜성 충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빌려,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대중 심리, 언론의 태도, 그리고 과학의 무력감을 통렬하게 비튼다. 이 작품의 핵심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인–과학자–언론–대중이라는 네 축이 서로를 이용하고 외면하며, 위기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메시지가 한층 선명해진다. 아래에서는 주요 인물의 관계와 역할, 그리고 그 행동에 깔린 의도와 상징을 차근차근 짚는다.

케이트와 랜들 — 과학자의 경고는 왜 묵살되었나?

대학원생 천문학자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가 혜성을 발견하고, 스승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지구 충돌 궤도를 계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둘은 곧장 정부와 NASA 산하 조직에 보고하지만, 과학적 사실은 정치·산업·미디어의 이해관계 속으로 흡수된다.

케이트는 “있는 그대로 말하자”는 태도를 끝까지 고수한다. 직설적이고 날 선 언어는 곧 ‘감정적이고 과격하다’는 프레임에 갇히고, 대중의 비난을 부른다. 분노와 절규가 ‘밈’으로 가볍게 소비되는 장면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왜 종종 톤과 포맷의 문제로 휘청이는지 보여준다. 반면 랜들은 처음엔 연구자 본분을 지키려 하지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권력의 초대 속에서 점점 ‘스타 과학자’로 변한다. 자문역을 맡고, 앵커 브리 앤터니와 얽히며, 진실과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한다. 같은 출발선에 선 두 과학자가 시스템 바깥으로 걸어 나간 케이트시스템 안에서 소모된 랜들로 갈라지는 과정은, 위기 국면에서 과학이 어떻게 이용되고 무력화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대조는 마지막에 극대화된다. 랜들은 뒤늦게 스포트라이트에서 물러나 가정과 소박한 식탁으로 돌아온다. 그는 ‘정상성(normalcy)’의 온기를 붙잡으려 하고, 그 옆에서는 케이트가 낡은 유머와 따뜻한 연결감으로 순간을 견딘다. 과학의 언어로 통제할 수 없는 파국 앞에서, 이들이 선택하는 건 “사실”을 넘어 “관계”다. 반대로, 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케이트는 시스템 밖의 자리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균형을 되찾는다. 둘의 궤적은 진실·경력·존엄이 충돌할 때 개인이 어떤 균열을 겪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다.

대통령과 참모들 — 정치적 계산과 위기의 이용

미국 대통령 오를레안(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의 가장 노골적인 풍자 대상이다. 그는 경고를 신뢰하기보다 정치적 손익 계산부터 한다. 여론의 바람을 타며 태도를 바꾸고, 스캔들이 터지면 갑자기 과학을 들먹이며 ‘결단’을 포장한다. 위기는 곧 지지율 관리의 소재가 된다.

비서실장이자 아들 제이슨(조나 힐)은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과학자들을 깎아내리며 대중을 ‘소비자’ 정도로만 취급한다. 모자는 함께 “Don’t Look Up(위로 보지 마)” 캠페인을 밀어붙이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행위 자체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여기서 정치의 본색은 분명하다. 공익보다 권력 유지, 진실보다 프레임 관리. 그 계산과 무감각이 결국 파국의 동력이 된다.

영화 후반, 권력은 마지막까지 자기만의 백업 플랜을 챙긴다. 다수가 위험에 빠지는 동안, 소수는 도피선을 마련한다. 재난이 ‘모두의 위기’가 아니라 계층과 접근성에 따라 다른 위기가 되는 순간, 민주주의의 외피는 벗겨진다. 영화는 이 지점을 과장된 농담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현실 정치의 냉혹한 우선순위를 비껴가지 않는다.

테크 자본과 알고리즘 — 피터 이셔웰과 ‘수익성 있는 종말’

권력의 또 다른 축은 빅테크 CEO 피터 이셔웰이다. 그는 인간 행동을 한줌 데이터 포인트로 가늠하고, 혜성조차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 본다. 과학적 위험도는 기술·자본의 수익성 앞에서 뒷순위로 밀린다. 이 커브는 현실에서도 익숙하다. “가능하다면 해야 한다”는 기술 결정론이, 실패했을 때의 집단적 비용을 누구에게 전가할지를 질문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늘 매끈하고 창의적이지만, 리스크를 외부화한다. 실패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답은 모호하다. 결국 테크 자본의 언어는 예측·개인화·최적화를 약속하지만, 위기 관리의 핵심인 책임·거버넌스·공공선을 희미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 불균형을, 말끔한 프레젠테이션과 상냥한 어조로 포장된 잔혹한 효용 계산으로 풍자한다.

미디어와 대중 — 진실보다 자극을 선택하는 사회

둘이 출연하는 〈데일리 립〉은 전형적인 미국식 모닝쇼다. 진행자 브리 앤터니(케이트 블란쳇)는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진지한 경고를 가벼운 컨텐츠로 포장하려 한다. 잭 브레머(타일러 페리) 역시 시청률을 위해 무게를 덜어낸다. 브리는 랜들과 얽히면서 영향력·커리어·감정의 경계를 흐리고, 언론은 현실의 위협을 소비 가능한 엔터테인먼트로 바꾸는 데 익숙해 보인다.

대중은 온라인에서 “Don’t Look Up”“Just Look Up”으로 갈라선다. 과학을 신뢰하자는 목소리와, 정치적 효용을 위해 사실을 회피하자는 선동이 충돌하고, 사람들은 각자 성향에 맞춰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정보 과잉, 확증편향, 집단 동조가 진실의 전달을 방해하는 방식이 그대로 재현된다. 짧은 클립, 밈, 챌린지로 압축되는 메시지의 생태계는, ‘복잡한 진실’보다 ‘간단한 확신’을 팔기에 적합하다. 영화가 말하는 공포는 재난 그 자체보다 ‘무관심과 선택적 믿음’에 가깝다.

셀럽들이 가세한 선의의 캠페인도 쉽게 콘텐츠화된다. 진정성은 조회수와 대치하고, 공감은 팬덤의 정치화 속에서 흔들린다. 결국 미디어는 진실을 다루는 기관이라기보다, 관심을 사고파는 장터로 그려진다.

보조 축: 테디, 율, 그리고 ‘작은 선’

영화는 냉소만 쌓지 않는다. 테디 오글소프 같은 인물은 공공기관 안에서 소신과 절차를 지키려는 드문 사례다. 큰 판을 뒤집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윤리를 견인한다. 과 같은 젊은 인물은,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작은 선(善)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들의 존재는 마지막 장면의 작은 식탁으로 이어진다. 커피 향, 빵 부스러기, 어색한 농담—거대한 파국의 소음이 잦아들 때 남는 건 이런 일상의 결이다.

인물관계도로 본 상징(요약)

  • 과학자(케이트·랜들): 사실을 발견하지만, 시스템 속에서 번역·편집·거래되는 존재
  • 권력(오를레안·제이슨): 위기를 위기관리의 소재로 가공하는 존재
  • 테크 자본(이셔웰): 재난조차 수익화하려는 체계
  • 언론(브리·잭): 진실을 시청률과 호감도에 맞게 포장하는 존재
  • 대중: 정보의 수용자가 아니라 알고리즘과 정체성에 의해 분절된 집합
  • 보조 축(테디·율): 거대한 불신 사이에서 절차·연결·양심을 지키는 미세한 완충재

메시지의 결론 — ‘보고도 믿지 않는 사회’

결국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것은 ‘보고도 믿지 않는 사회’다. 영화의 결말에서 지구는 파멸하고, 각 인물은 자기 위치에서 그 파국을 맞는다. 종말은 외부에서 떨어진 돌덩이 때문이라기보다, 사회 기능의 붕괴가 빚어낸 내부의 결과라는 결론이 선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에 가장 설득력 있는 해결은 과학적 소명도, 정치적 결단도 아닌, 서로의 손을 잡는 일로 남는다. 이는 희망을 약속하진 않지만, 우리가 무엇을 잃어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애도는 허락한다.

마무리 질문

이제 한 번 더 떠올려 보자. 당신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진 인물은 누구였나? 만약 그 인물이 권력이나 언론이 아니라, 테디·율·식탁의 사람들에 가깝다면—그 답이 이 영화가 우리를 붙잡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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